"아, 저기! 마을이 보여요!"
안나가 썰매 위에서 금방이라도 통통 튀어 오를 듯 신이 나서 외쳤다. 고삐를 쥐고 있던 크리스토프 역시 마을 입구를 발견하고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좋아. 스벤, 거의 도착이야. 조금만 더 힘내자고, 친구."
"우어엉."
스벤도 신이 난 듯 한층 움직임이 빨라졌다. 지금 이 일행이 향하고 있는 장소는 '사랑의 마을'이라고 하는, 아렌델에서 제법 거리가 되는 북쪽 산 근처의 작은 관광지였다. 얼마 전, 모처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이번에는 어떤 곳으로 여행을 가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안나가 크리스토프에게 그가 그동안 여행했던 경험이 있는 곳들 중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가 없냐 물었고, 그때 크리스토프가 '사랑의 마을'에 관한 얘기를 꺼내게 되어 결국 사랑의 마을에서 닷새 동안 여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근데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놀랐어요. 크리스토프가 '사랑의 마을'이라는, 이름부터 너무나 사랑스러운 장소에서 여행을 한 적이 있다니!"
"우연히 이 곳의 얼음 장수와 교류할 일이 생겨서 겸사겸사 여행을 하게 됐을 뿐이에요."
크리스토프가 살짝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안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익살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두 사람이 몸을 실은 썰매는 사랑의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안나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그녀는 전에 크리스토프에게 들었던 대로 이 마을이 사랑의 마을이라는 특별한 이름에 걸맞게 모든 건물들이 각양각색의 하트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감탄을 자아냈다.
"정말 마을 전체가 하트로 가득하네요! 너무 귀엽다!"
안나는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서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빨강, 보라, 초록, 노랑 등등 여러 다양한 색의 하트들은 그녀의 마음을 저절로 들뜨게 했다.
"일단 여관에 짐부터 내려놓고 찬찬히 마을 구경을 해 봐요."
"좋아요. 정말 설레네요!"
잠시 후, 크리스토프는 미리 예약해두었던 적당한 규모의 여관 쪽으로 썰매를 몰았다. 크리스토프 일행이 여관 앞에 다다르자 푸근한 인상의 여관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제 이름은 데브라예요. 우리 여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분이 묵을 방은 2층 가장 안쪽 방이에요. 자, 안으로 들어가세요. 썰매랑 순록 친구는 마구간으로 안내하면 될까요?"
"네. 감사합니다."
"두 분은... 부부신가요?"
"아, 그게 아직..."
"맞아요! 부부예요!"
안나가 싱글벙글 웃으며 크리스토프의 팔에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 모습에 데브라는 해맑은 미소를 짓고는 보기 좋은 한 쌍이 자신의 여관에 묵게 되어 무척 반갑다는 말과 함께 크리스토프에게 방열쇠를 건넸다. 그리고는 썰매와 스벤을 능숙한 솜씨로 마구간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데브라의 인기척이 없어지자 크리스토프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안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부부라니..."
"청혼은 했으니까 거의 반은 맞는 말인 셈이죠? 아니면 혹시 내게 반지를 건네면서 했던 말은 거짓이었나요?"
"아뇨! 그럴 리가 있겠어요!!!"
"쿠후후, 그럼 아무 문제없네요. 가실까요? 서방님."
"... 네, 부인."
크리스토프가 안나의 왼손을 꼭 붙잡았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는 그가 그녀에게 직접 선물한 오렌지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안나는 크리스토프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뒤 단 한 번도 약혼반지를 손에서 뺀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이 크리스토프의 마음을 여느 때보다 벅차오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 말하면 잔소리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에 깍지를 낀 채 방으로 향했다.
"데브라 씨가 우리가 묵을 방이 2층 가장 안쪽 방이라고 했죠?"
"네. 아마 여긴 것 같은데? 어디, 열쇠가..."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덜컹 열렸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은 마치 과자집에 들어선 헨젤과 그레텔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두 사람이 닷새 동안 묵게 될 방은 차분한 느낌의 자주색 벽지와 빨간색의 커다란 소파, 방안 곳곳을 가득 메운 하트 모양의 장식들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사랑의 마을이라는 장소에 가장 걸맞은 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랑스러운 인테리어네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후후."
"음? 뭐~예요~?"
크리스토프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뒤쪽에서 그의 등을 껴안은 채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단 둘이 있게 됐는데,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 요즘 들어 너무 적극적이신데요? 여왕 폐하. 아직 짐도 제대로 안 풀었는데."
"크리스토프랑 있는 게 너무 좋아서 그런 거라고요."
안나가 맑고 또렷한 눈으로 크리스토프를 응시했다. 크리스토프는 몸을 돌려 안나를 자신의 품에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고,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목에 팔을 둘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에 밀착한 채 달콤한 키스에 빠져들었다.
"음..."
"불편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나도 너무 좋아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마주 웃었다. 그저 상대방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이 기분을, 대체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하는 걸까.
"자, 이제 빨리 짐 정리하고 한 번 마을 밖으로 나가봐요. 안나랑 가보고 싶은 곳이 정말 많아요."
"네!"
***
크리스토프와 안나는 사랑의 마을을 여행하는 동안 늘 어디든지 함께했다. 아침에 잠을 깨면 함께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고, 여관 주인과 인사를 나눈 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이 단란한 한 때를 보내는 동안 스벤은 마을의 다른 순록들과 어느새 두터운 말동무가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동화 같은 시간이었다.
"벌써 내일이면 성으로 돌아가야 하다니..."
안나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죠."
"아아~즐거운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걸까?"
"아렌델로 돌아가면 또 새로운 즐거운 일이 생길 거예요."
"꽤나 성향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네요, 크리스토프."
"안나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진 덕분이죠."
크리스토프가 어깨를 으쓱했다. 안나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이제 오늘 밤이 지나면 여기랑도 이별이네요. 안나. 혹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 있어요?"
"음... 아! 첫째 날에 갔었던 진실의 호수에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요."
"왠지 의외네요. 아마 안나라면 스케이트장이나 기념품 가게에 가고 싶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나야 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 특별히 가고 싶은 이유라도 있는 거예요?"
"도착할 때까지의 즐거움이라고 해둘게요."
안나가 지금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나? 크리스토프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대게 안나가 이런 식으로 행동할 때는 뭔가 특별한 걸 숨기고 있곤 했으니까. 크리스토프는 호기심을 갖고 밖으로 나가는 안나의 뒤를 따랐다.
하늘에는 이미 붉은빛과 보랏빛이 오묘하게 섞인 노을이 지고 있었다. 다른 곳보다 유난히 하루를 빨리 마무리하는 사랑의 마을 주민들은 다들 재빠른 걸음으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 도착했다."
"아무도 없네요."
"마침 잘 됐다."
"네?"
안나가 싱긋 웃었다. 크리스토프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없는 고요한 진실한 호수에는, 밤을 준비하는 물의 부드러운 노랫소리와 그를 도와주는 살랑이는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 아늑한 풍경 안에서 안나는 한 번 심호흡 쉬고는 크리스토프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크리스토프.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멋진 분이에요. 온 마음으로 그대를 사랑해요. 결혼해주시겠어요?"
크리스토프는 거의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그는 새삼 깨달았다. 이 사람을 예측한다는 건 아마 평생 불가능할 거라고. 약혼자가 준 반지를 낀 상태로 또 약혼자에게 반지를 내밀며 청혼하다니! 아마 이 세상에 그런 사랑스러운 일을 하는 약혼녀는 안나 말고는 없을 테였다.
"... 네!"
안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크리스토프는 단번에 그녀를 안아 들고 늘 그랬듯이 한 바퀴 빙글빙글 돌리고는 다정한 키스를 나누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당신이 나한테 프러포즈라니!"
"이번에 새로 주문 제작해두었던 크리스토프의 약혼반지가 딱 이번 여행의 출발 시기에 맞춰서 완성됐었거든요. 그런데 왠지 평범하게 건네주기 싫었어요."
"어째서요?"
"크리스토프는 나한테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프로포즈를 해줬잖아요. 그래서 나도 크리스토프에게 평생 잊지 못 할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안나..."
정말, 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크리스토프는 다시 한번 안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안나도 크리스토프를 마주 잡았다. 그리고 몇 번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였다. 두 사람은 '사랑의 마을'이라는 장소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사랑스러운 한 쌍이었다.
[2020.03.10 연성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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