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안나-연성글

앞으로 [겨울왕국/크리안나]

크안 may we may 2020. 5. 9. 01:09

찬 바람이 점점 거세져가는 늦가을이었다. 거의 코 앞까지 찾아온 매서운 겨울 날씨를 대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안나와 크리스토프 역시 아렌델이 이번 겨울도 무사히 보내길 바라고 있었다.

"성 밖을 보니 이제 너도나도 겨울 준비가 한창이네요."

크리스토프가 창문 너머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당분간은 계속 바쁠 거 같죠? 겨울 준비가 끝나면 곧바로 우리 결혼식 준비가 시작될 테니까. 이래저래 정신이 없어지겠어요."
"...있죠, 크리스토프. 그 결혼식이랑 관련해서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

달그락, 달그락소리를 내며 왕실 마차가 쉴 틈 없이 계속 움직였다. 마차 안에 나란히 앉은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평소보다 크게 신경 쓴 정장복 차림에 각각 다른 색의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여왕 폐하. 이 앞부터는 마차가 들어갈 수 없는데요?"
"네, 마부님. 여기서부터는 직접 걸어갈테니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주세요."

안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크리스토프는 마차에서 먼저 내려 뒤이어 마차에서 내리는 안나를 붙잡아주었다. 이윽고 함께 마차에서 내린 크리스토프와 안나는 우거진 숲 속으로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곳에 오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한 3개월 만에 오는 건가?"
"나는 이곳에 마지막으로 왔던 게 한 1달 전이었어요."
"네? 나랑 같이 3개월 전에 온 게 마지막이 아니에요?"
"전에 스벤이랑 한 번 들렸었어요. 당신한테 정식으로 청혼하기 전에, 역시 먼저 두 분께 얘길 꺼내는 게 옳다고 생각했거든요."
"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가 안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안나는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같은 곳에 나란히 자리 잡은 거대한 비석 앞에 도착했다. 6년 전, 모든 진실을 찾고자 했던 아그나르와 이두나의 비석 앞에.

"엄마, 아빠.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입니다."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짧은 인사를 마치고 준비해온 꽃다발을 비석 앞에 내려두고 함께 공손하게 절을 했다. 안나는 절을 하면서 비석에 새겨진 부모님의 이름을 보자 저절로 마음이 뭉클해졌다.

"후! 그동안 잘 지내셨죠? 정말~~ 진짜 두 분 다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이번에 어떤 일이 있었는 줄 아세요? 아마 들으면 깜짝 놀라실 걸요!"

안나는 계속해서 유독 밝은 목소리로 그동안 쌓아왔던 이야기들을 모조리 쏟아냈다. 크리스토프는 안나가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비석 주변에 자라나 있는 잡초들을 조금씩 뽑아냈다. 이는 3년 전부터 줄곧 이어져 왔던, 두 사람만의 아주 자연스러운 연례행사들 중 하나였다.
이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안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크리스토프의 잡초 뽑기도 마무리되자,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비석 앞에 나란히 섰다.

"... 엄마, 아빠. 오늘 꼭 해야만 하는 얘기가 한 가지 더 있어요. 나 말이죠, 앞으로 며칠 뒤면 이 사람과 결혼해요."

안나가 크리스토프의 손을 꽉 쥐었다. 그에 크리스토프는 말없이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비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신기하죠? 내가 결혼을 하게 되다니! 어릴 때, 엘사 언니랑 마법의 숲 놀이를 하며 나만의 왕자님을 꿈꾸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새삼 참 시간이 빠르구나~하고 느꼈어요! 정말... 진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
"안나..."
"흑... 흐윽..."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안나는 그의 품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기쁨과 슬픔이 그녀의 머릿속을 빙빙 싸고돌았다. 

함께 있었더라면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을 텐데.

안나는 계속 울면서 떨리는 손으로 크리스토프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곧이어 무언가 크게 결심한 듯, 서서히 그는 입을 열었다.

"선왕 폐하. 아니, 아버님. 한 달 전, 제가 이곳에 찾아왔을 때 무척이나 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불었어요. 저는 그 바람이 아버님과 어머님이 저와 따님 사이를 축복해주신다는 뜻인 것 같아 무척 기뻤어요. 저는 아직 부족한 점 투성이지만, 이것만은 자신할 수 있어요. 안나를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할게요. 두 분의 몫까지 합해서."

크리스토프가 굳건한 표정을 지었다.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얘기에 조금씩 울음을 그쳤다.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상태로 오랫동안 한 자리에 서 있었다.

***

"이제 조금 진정됐어요?"
"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안나가 대답했다.

"요새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어서 그게 한 번에 터졌나 봐요. 미안해요... 갑자기 울어서 많이 당황했죠?"
"전혀요. 나는 오히려 이제 좀 안심했어요." 
"안심했다고요?"

안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크리스토프를 바라보았다. 크리스토프는 싱긋 웃으며 안나의 뺨을 톡, 하고 건드렸다.

"요새 당신이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잖아요. 줄곧 베일에 싸여있던 부모님의 진실을 알게 된 데다, 엘사의 뒤를 이어 여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으니까.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심 항상 조마조마했어요. 안나가 뭐든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스트레스로 폭발하는 게 아닐까 했거든요."
"그랬... 어요?"
"네. 그래서 방금 무척 기뻤어요. 당신이 내 품에 안겨서 엉엉 운다는 건, 그동안 쌓여있던 모든 스트레스를 단번에 풀어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으니까. 어때요? 안나. 이제 좀 후련해졌어요?"
"그거야... 당연히."
"다행이다."

크리스토프가 양손으로 안나의 뺨을 감쌌다. 크리스토프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안나는 덩달아 자신의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안나. 나랑 결혼하기로 해줘서 고마워요."
"뭐예요, 갑자기."
"진심이에요. 당신처럼 사랑스러운 사람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가슴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크리스토프..."
"전에도 얘기했었죠? 뻔한 말이지만, 내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싶다고. 안나, 앞으로도 내 앞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괜찮아요."
"고마워요."

안나가 방긋 웃었다. 크리스토프는 안나가 이제야 활짝 웃었구나, 하면서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왠지 모르게 하늘도 웃어준 것 같았다.

[2020.02.25 연성 백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