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와 안나의 관계는 남다르다. 단순히 사이좋은 연인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두 사람 사이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엘사는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안나가 크리스토프에게 생기발랄하고 장난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으나, 반면에 크리스토프가 안나가 어떤 이상한 장난을 쳐도 크게 화를 내지 않는 것에는 거의 경악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진정한 사랑의 힘이란 게 이렇게 실로 대단하단 말인가. 또 한 편으로는 크리스토프가 안나를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고, 안나가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하기도 했다.
안나는 원래부터 스릴 있는 장난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분명 성문이 닫혀있는 동안, 어두운 궁전 분위기에도 그녀의 부모님이 생기를 잃지 않았던 이유에는 둘째 딸의 생기발랄함이 크게 한몫했으리라. 크리스토프도 장난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다만 그의 장난은 행동보다 말에 치중되어 있었다.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말장난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에게 스릴 있는 장난을 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했다.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남다른 유머감각을 꽤나 높이 샀고, 그녀의 장난을 알게 모르게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하나 터졌다.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주말에 일어난 일이었다.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상대적으로 인파가 적은 곳에 도달했고, 안나는 한 가지 기막힌 스릴 넘치는 장난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크리스토프! 저기~~~앞까지 한 번 먼저 가볼래요?"
"갑자기 왜요?"
"일단 질문은 나중에, 빨리요! 어서!"
안나가 크리스토프의 등을 밀었다. 크리스토프는 어리둥절해하면서 안나가 만족하는 정도의 거리가 될 때까지 그녀보다 한참을 앞으로 나아갔다. 크리스토프와 자신의 거리가 윈하는 만큼 벌어지자, 안나는 씰룩 웃었다.
"좋아요! 딱 적당한 거리네요. 그럼 지금부터 믿어주기 실습을 시작하겠습니다!"
"믿어주기 실습?!"
믿어주기 실습이란 예전에 두 사람이 엘사의 얼음성으로 향할 때, 안나가 빙벽 위의 높은 곳에서 크리스토프의 품으로 떨어지고 나서 했던 말이었다. 그때 느꼈던 경이로움과 당혹감을, 크리스토프는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했다.
"안나. 믿어주기 실습이라니, 대체 뭘 하려고요?"
"지금부터 나는 눈을 가리고 크리스토프 앞으로 걸어갈 거예요. 어릴 때 곧잘 했던 스릴 넘치는 놀이죠. 크리스토프는 오직 소리로만 자기가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면 돼요!"
"안 돼요, 안나! 너무 위험해요!"
"지금 여긴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괜찮아요~자 시작!"
안나는 곧바로 눈을 감고 걷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프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안나의 움직임을 살피기 시작했다. 안나의 고집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크리스토프는 최대한 빨리 안나가 무사히 자신이 있는 곳에 도달하기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토프? 나 잘 가고 있나요?"
"네, 네! 그대로 쭉 걸어와요!"
크리스토프의 말에 안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오리 같은 걸음을 계속했다. 이 와중에 크리스토프는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안나를 귀엽다고 느낀 제 자신이 스스로도 참 못 말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이 상황이 생각보다 재밌기도 했다.
'딸랑.'
"엇? 이 소리는..."
갑자기 방울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토프는 이 소리가 사과장수가 흔드는 방울소리임을 단번에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덩치 좋은 사과장수가 사과가 한가득 담긴 썰매를 끌고 안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사과장수는 썰매에 잔뜩 쌓인 사과 높이 때문인지 안나가 안 보이는 듯했다. 안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계속 걷고 있었다.
'안 돼!'
크리스토프가 소리쳤다. 이대로 있다간 사과장수와 안나가 부딪힐 것이다. 그는 곧바로 안나를 향해 달려갔다. 크리스토프는 순식간에 안나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옆으로 빠르게 밀쳤다.
'쾅!'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크리스토프는 의식이 희미해졌다.
***
"크리스토프! 괜찮아요?"
크리스토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스멀스멀 눈을 떴다. 그가 의식을 되찾자 안나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뭐지? 크리스토프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안나 말고도 엘사, 올라프도 함께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깨어났어!"
올라프가 안심된 목소리로 말했다. 엘사도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토프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안나는 울먹거리며 크리스토프를 계속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크리스토프가 사과장수와 부딪힐 뻔한 안나를 구하고 대신 본인이 충돌했어요. 다행히 큰 상처는 안 났지만, 당신은 의식을 잃었고 사과는 산산조각이 났죠."
엘사가 크리스토프의 질문에 엄숙한 말투로 답변했다. 그에 안나는 몸을 움찔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안나. 이번 기회에 반성 확실히 하도록 해. 전부터 네가 크리스토프한테 짓궂은 장난을 많이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도가 지나쳤어."
"잘못했습니다..."
안나가 시무룩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엘사는 한숨을 쉬고는 크리스토프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뒤 올라프와 방을 나갔다. 이제 방안에 남은 사람은 크리스토프와 안나, 단 둘 뿐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안나..."
"정말 미안해요, 크리스토프... 내가 너무 장난이 지나쳤어요. 나는 그저..."
"아니에요. 안나. 난 괜찮아요. 당신이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난 충분해요. 그러니까 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말아요."
크리스토프가 다정하게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나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크리스토프의 손을 잡았다.
"왜 항상 크리스토프는, 내가 어떤 장난을 쳐도 화내지 않아요?"
"음... 우선 안나의 장난은 재밌어요. 안나가 나를 기분 전환시켜주는 하나의 방법 같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가장 큰 이유, 나는 당신이 장난치는 모습이 가장 좋아요."
안나는 마음이 일렁였다. 크리스토프는 싱긋 웃었다. 안나는 크리스토프를 다시 끌어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거의 매달렸다. 크리스토프는 자신에게 다시 매달려오는 안나를 단단하게 잡아주었다.
***
"크리스토프는 참 신기해. 나 역시 안나의 발랄한 성격을 좋아하지만, 그 아이의 장난꾸러기 기질은 가끔씩 너무 도가 지나쳐서 나까지도 화를 내게 만들 때도 있는데 말이지. 난 한 번도 크리스토프가 안나의 장난에 절대 크게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엘사가 올라프와 궁전 복도를 거닐며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랑의 힘이란 참 위대하네.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정말 너무나도 사랑하나 봐."
올라프가 엘사의 중얼거림에 덧붙였다. 사랑의 힘이라... 역시 그게 답인가? 엘사는 아직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크리스토프와 안나의 관계는 남다르다. 단순히 사이좋은 연인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두 사람 사이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엘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2020.01.12 연성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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