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안나-연성글

조언 [겨울왕국/크리안나/리퀘스트]

크안 may we may 2020. 5. 8. 22:20

포근하고 조용한 오후였다. 주변에서 나무와 바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중력을 잊은 몸은 두둥실 떠 있는 느낌이다. 크리스토프는 침대에 누워있는 안나의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아내의 배에 자리 잡은 새로운 생명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안나가 크리스토프와의 사이에서 첫 아이를 갖게 됐다는 사실을 안 지도 벌써 3주가 지났다. 맨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안나는 온 마음으로 울컥했고 크리스토프는 격한 기쁨에 엉엉 울었다. 그럴 정도로 아이는 두 사람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큰 축복이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이제 고작 3주인 걸요? 나도 실감이 안 나요."

"하하하... 아이가 생긴 건 진심으로 기쁘지만, 부모가 된 다는 건 조금 어려운 문제 같아요. 우리 아이를 위해 어떤 걸 해주면 좋을지 감도 잘 안 잡히고."

 

크리스토프가 안나의 배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안나도 남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저기, 크리스토프. 우리 한 번 주변의 지인 분들한테 육아에 대한 조언을 구하러 다녀보는 건 어때요?"

"조언이요?"

"우린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잖아요. 게다가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뒤로 한동안은 계속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도 했고, 밖에 나가서 가볍게 바람도 쐴 겸."

"좋은 생각이에요, 안나. 아이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

 

"... 그래서 가장 먼저 저희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셨다는 얘기군요."

 

아렌델의 성실한 충신이자 국왕 부부의 오랜 인연이기도 한 카이와 게르다가 말했다.

 

"네! 두 분은 우리보다 인생 경험도 풍부하고, 다양한 지식도 보유하고 계시니까요!"

"그래서 두 분을 가장 먼저 찾아왔죠."

 

안나의 생기발랄한 얘기에 크리스토프가 해맑게 뒷말을 덧붙였다.

 

"육아라... 우선 아이를 돌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도 제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여러모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어요. 아이가 밤낮없이 계속 울고, 뭘 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어서 답답했죠. 하지만 계속 노력해서 아이의 시선에 나를 맞추니까, 서서히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보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부모가 아이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게르다의 말이 맞아요. 그리고 저는 거기에다 육아는 체력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네요. 또한 인내심이 굉장히 강해야 한다는 것도."

 

카이와 게르다가 서로의 얘기에 맞장구를 치며 신나게 깔깔댔다. 크리스토프와 안나는 그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얼핏 예상은 했지만, 육아라는 것은 자신들이 지금껏 생각해왔던 것보다도 훨씬 더 힘겨운 일인 듯했다.

 

두 충신과의 담소를 마친 크리스토프와 안나는, 두 번째로는 크리스토프의 가족인 트롤 식구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간 성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터라 안나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유일하게 트롤들한테만 직접 알리지 못했기 때문에, 겸사겸사 소식도 전할 겸 육아에 대한 또 다른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결정한 방문이었다.

 

빠르게 간단한 짐을 꾸린 크리스토프와 안나는 순식간에 트롤 협곡으로 떠날 준비를 금방 끝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마차에 오르자,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차가 기운차게 출발했다. 모처럼의 외출에 안나는 저절로 흥이 났다. 신나 하는 안나를 보면서 크리스토프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몇 시간을 조용히 달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고, 주변에는 잔잔한 어둠이 가라앉고 있었다. 마부는 산의 바위로 이루어진 지형 사이로 마차를 이끌면서 여러 계곡과 언덕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 마차는 트롤들이 거주하고 있는 바위 계곡에 도착했다.

 

"자, 안나. 조심해서 내려요."

 

마차에서 먼저 내린 크리스토프가 뒤이어 안나의 손을 정중히 잡아주었다. 안나는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바위 계곡의 상쾌한 공기에 마음까지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토프는 마부에게 마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대기하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 운전에 지쳐있던 마부는 곧장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엄청난 수의 암석들이 크리스토프와 안나에게로 굴러오기 시작했다. 안나가 그 풍경에 잠시 넋을 놓은 사이 바위들은 차례차례 트롤들로 변했다.

 

"크리스토프와 안나가 집에 왔다!!"

"집에 왔다!!"

 

불다가 실로 오랜만에 바위 계곡을 찾아온 두 사람을 발견하고서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트롤들도 함께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두 건강했지?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에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 잠깐! 안나?"

"네?"

"너에게서 새로운 생명의 빛이 느껴지는 걸?"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불다의 말에 깜짝 놀랐다. 불다는 두 사람의 반응에 잔뜩 신이 나서 히죽히죽 웃었다.

 

"어떻게 바로 아셨어요?"

"내가 여태 살아온 세월이 몇 천 년인데, 눈치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하지! 정말 축하해!!"

"뭐야 크리스토프, 아빠가 된 거야??"

"안나는 엄마가 된 거고??"

"우와, 축하해!!!"

 

트롤들이 번갈아가며 시끄럽게 말했다. 크리스토프와 안나는 자신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격한 축하를 보내오는 트롤 식구들이 무척 고마웠다.

 

"크리스토프. 안나."

"할아버지!"

 

트롤들의 족장이자 가장 나이가 많은 트롤이기도 한 패비가 나타나자, 크리스토프는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안나도 함께 인사했다. 그러자 패비 역시 불다와 마찬가지로 안나에게 새 생명의 빛을 느끼고는,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축하한다. 드디어 아이가 생겼구나."

"네. 감사해요 할아버지. 그래서 말인데, 오늘은 모두에게 육아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어요."

"그거라면 우리 전문이지!"

 

불다를 포함한 부모 트롤들이 신나서 말했다. 크리스토프와 안나는 다정하게 손을 마주 잡았다.

 

트롤들은 안나와 크리스토프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육아에 대한 여러 지식들을 얘기해주었다. 카이와 겔다가 해준 육아 조언이 부모로서 어떤 각오를 다져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면, 트롤들의 육아 조언은 실질적으로 아이를 돌볼 때 어떤 것에 유의하면 좋을 지에 대한 얘기가 주류를 이뤘다.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야. 또 아주 고귀하고, 무척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지. 나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너희라면 분명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고마워요, 불다."

 

안나가 아련한 웃음을 지었다. 크리스토프도 함께 웃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새 생명이 자리 잡고 있는 곳에 시선을 보냈다. 참으로 신기했다. 아직 성별도, 제대로 된 형태도, 목소리도 없는 작은 존재가, 두 부부를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어서 오렴, 아가야. 엄마 아빠는 널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 하루빨리 너와 만나고 싶다.

 

[2020.01.10 연성 백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