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냥 잠깐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었다. 최근에 일이 부쩍 바빠져서, 같이 있는 시간이 부쩍 줄어든 탓에 계속 안나의 얼굴을 못 봤으니까. 그래서 아주 잠깐 인사만 하고 바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 공주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외로움을 타고 있었나보다.
"안나. 잠깐만요..."
"싫어요."
안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점점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멀뚱멀뚱 서 있었다.
나랑 안나는 지금 비교적 인적이 드문 왕궁 끝자락 복도 쪽에서 포옹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안기고 있는 거였지만) 허나 언제 사람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기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크리스토프는 나랑 안고 있는 게 싫어요...?"
불만과 서운함이 가득한 눈망울이 시야에 들어온다. 꼭 같이 놀아달라고 조르는 아기 고양이 같다. 귀엽다.
"싫은 게 아니라...어, 난 지금 일을 하다 잠깐 빠져나온거라 작업복을 입은 상태고, 또 여기에 언제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상관없어요. 난 작업복을 입은 크리스토프가 좋고, 사람이 나타나면 내가 공주의 권한으로 자리를 비켜달라 명령하겠어요."
진심인지 장난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는 게 참 안나답달까.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뭐라 반박할 수 있는 여지조차 주시지 않는군요, 공주님."
나는 걱정을 잠시 뒤로 제쳐두고, 억지로 회피하고 있었던 외로움과 사랑을 담은 눈빛으로 안나와 시선을 맞췄다. 안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눈웃음을 보였다. 참 신기한 느낌이다. 말을 나누고 있지 않는데도, 이미 마음은 확실히 닿아있다는 걸 강하게 느끼고 있다.
안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내 뺨에 입술을 꾹 누른다. 이 행동은 나의 심장을 가장 떨리게 만드는 행동들 중 하나였다. 나는 안나의 뺨을 한 손으로 지탱한 뒤 내 입술을 그녀의 입술 위에 꾹 눌렀다. 안나가 입꼬리를 올리는 게 곧바로 전해졌다.
"충전."
"100% 확실히요."
가슴 속에 작지만 강렬한 무언가가 퍼져나간다. 따뜻하다. 그저 상대와 눈을 맞추고, 서로의 부드러움을 공유했을 뿐인데.
"이제 그만 가봐야하는거죠?"
한껏 아쉬운 표정을 한 안나가 묻는다. 아까 처음 봤을 때보다도 더 곁을 떠나기가 싫다.
"금방 또 찾아올게요. 부디, 기다려 주시겠어요?"
"빨리 안 오면 다음엔 내가 찾아갈거예요."
정말 예측할 수 없다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욱더 눈에 밟힌다. 힘내자. 오늘 충전한 에너지가 사라지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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